삼성전자, 왜 퀄컴을 사지 않았을까?
잃어버린 기회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는 퀄컴을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할 기회를 여러 차례 맞이했습니다.
당시 퀄컴은 CDMA 특허와 모뎀 칩을 기반으로 급성장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의 CDMA 단말 제조사였고,
자체 반도체 라인(시스템 LSI)까지 보유한 드문 기업이었습니다.
칩과 단말, 네트워크를 모두 통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 기회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로열티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이 익숙하지 않았고,
“칩은 우리가 만들면 된다.”는 내부 판단이 더 설득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퀄컴은 라이선스 비즈니스로 글로벌 표준을 만들었고,
삼성전자는 수직통합이라는 자신만의 틀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사업의 구조’
퀄컴은 칩을 파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재산(IP) 을 팔았습니다.
고객이 늘어날수록 시장 전체가 커졌고,
모든 제조사가 퀄컴의 기술을 사용하며
그 생태계 안에서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삼성전자는 달랐습니다.
제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칩도, 스마트폰도, 디스플레이도
”내가 만들어 내가 쓴다.”는 방식이 유지되었습니다.
제품은 많았지만 생태계는 좁았습니다.
기술은 뛰어났지만, 시장은 닫혀 있었습니다.
수직통합의 덫
수직통합은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경쟁이 사라진 효율은 곧 타성이 됩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내부 고객’ 구조가 시장 경쟁을 대체했습니다.
DS(부품) 부문은 MX(모바일) 부문에 납품했지만
가격 경쟁이나 품질 평가의 압력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제품 부문은 외부 칩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어려웠습니다.
혁신은 시장이 아닌 회의실에서 결정되었고,
효율은 점차 관성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효율의 제국은 느림의 제국으로 변했습니다.
경쟁이 사라진 조직의 미래
퀄컴은 고객과 경쟁하며 성장했습니다.
애플, 소니, 샤오미, 심지어 삼성전자까지
모두 ‘고객이자 경쟁자’였습니다.
그 긴장감 속에서 기술은 시장을 향해 진화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반대로 내부를 향해 진화했습니다.
직급과 보고 체계가 기술보다 앞섰고,
시장보다는 ‘조직 간 이해관계’가 의사결정을 좌우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시장으로 열린 구조
메모리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산업은 완전히 ‘열린 시장’ 위에서 경쟁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팔고, 표준을 주도하며, 가격 경쟁을 감내했습니다.
그래서 매출 변동은 컸지만, 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특히 Wi-Fi나 모뎀 같은 영역도
그렇게 열린 경쟁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
SmartThings, Exynos, Wi-Fi 칩을 외부에도 공급하고
다른 제조사와 경쟁해야 진짜 기술이 완성됩니다.
삼성전자가 다시 혁신의 속도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할이 아니라, 경쟁이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내부 효율의 울타리 안이 아니라
시장 속에서 평가받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
기술은 비로소 다시 살아납니다.
교훈
“수직통합은 경쟁을 없애는 구조가 아니라,
경쟁을 설계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퀄컴을 사지 않은 건 단순한 인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기술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시장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는 진리를 놓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삼성전자는 기술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경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혁신의 시작입니다.